조산아 / 미숙아 / 저체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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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1일에 쓴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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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둘째 딸이 태어났습니다.
지난 8월 24일 새벽 4시의 일입니다. 오늘이 백일입니다.
이야기를 조금 과거로 돌리겠습니다.
8월 23일이지요.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니까 첫 애가 쪼르르 달려오더니 “오늘 엄마 하루종일 몸이 안 좋아서 누워있었대.” 하더군요. 어디가 아파, 어떻게 아픈데 하면서 가볍게 물어보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뻔뻔스럽게 집 사람이 차려주는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집사람은 배가 아래로 쳐진다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계속해서 배가 아프다고 하더군요. 조금 뭔가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일정한 주기를 보이면서 아프더군요. 속으로는 이것 산통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첫 애 낳을 때도 예정이 한달 정도 남아있는데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이슬이 비친다고 급하게 저를 깨우더군요. 그래서 병원 찾아가서 그날 오후쯤에 별 고생하지 않고 무사히 낳았습니다. 그 때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것이지요. 워낙 집사람이 튼튼하니까요. 아, 임신 26주를 갓 넘긴 상태에서 애를 낳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지금이라도 병원 가보자’, ‘아냐 조금 참아볼래, 내일 아침에 가보지 뭐’, 이러면서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늦은 시간에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 의사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의사가 상황이 안 좋은 것 같다고 하면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말고 누워 있다가 아침 일찍 오라고 하면서 통증이 계속되면 다시 연락하라고 하더군요.
통증은 계속 되었습니다. 밤 12시쯤 잠자고 있는 첫 애를 깨워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엄마, 아빠는 병원에 간다. 혹시 어쩌면 네가 아침에 학교 갈 시간에 스스로 일어나서 가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렇게 되면 혼자서 침착하게 잘 일어나서 냉장고에 있는 것 꺼내먹고 학교 갔다오라고요. 의료보험증과 초음파 사진 등 간단한 것들을 챙겨서 동네에 가까운 미즈메디라는 산부인과 전문 병원을 갔습니다.
당직 산부인과 의사는 금방 모든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이미 자궁이 열렸어요. 일단 자궁 수축제를 써보겠지만 진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네요.” 그러면서 혼잣말인지 ‘이런 얘기 받기 곤란한데…..’라면서 중얼거리더군요. 그리고 다른 병원들을 알아보더군요. 그런데 이 때는 의사들이 파업을 하고 있던 때입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당직 의사의 이런 행동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곤란한 출산을 회피하고 싶었던 것이고 두 번째로는 이런 경우의 출산은 전문적인 의료진들의 지원을 곧바로 받을 수 있는 규모나 시설의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아이의 생명에 조금이라도 효과적이기 때문에 아직 출산하지 않는 상태의 산모를 옮기는 것이 정당한 절차였기 때문입니다.
새벽 2~3시경의 대부분 큰 병원의 응급실이나 산부인과에서는 당연히 26주를 갓 지난 산모의 출산을 받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사이에 출산은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간호사들은 분만실에 들어가기 직전의 모든 조치를 다 취했습니다. 당직 의사는 별 수 없이 자기네 병원의 소아과 의사를 호출했습니다. 분만실에 들어가지 전에 산부인과 의사가 말하더군요. “일단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울기는 할 것입니다.”
분만은 무사히 이루어졌습니다. (산모가 겪은 정신적인 충격 등은 제외하구요.) 재태기간 26주+1일, 출산 방법은 자연 분만, 출생 시 아기 체중 950그램, 출생 시간 04:00 그리고 딸이었습니다.
신생아실 앞에서 기다리는데 인큐베이터 안에 아주 조그마한 아이가 있고 소아과 의사와 간호사 3~4명이 함께 오더군요. 지금은 응급 조치를 해야 하니 아침 7시경에 면담하자고 하더군요. 신생아실 바깥에서 커다란 유리벽을 통해 보이는 것은 의사와 간호사의 심각해 보이는 표정과 분주한 손놀림이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군요. 소아과 의사는 어린 여자였지만 나름대로 강한 판단력의 소유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한참 잠잘 시간대인 새벽에 호출 받아 나와서 긴장된 몇 시간을 보낸 약간은 피곤한 모습이었습니다. 의사는 지금까지 자신이 취한 조처와 저체중아들에게 특히 재태 기간이 짧은 아이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위험과 향후 취할 예상 조처들을 설명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폐호흡을 거의 못하기 때문에 폐포의 활동을 도와주는 계면 활성제를 처치했다. 전반적으로 생존률은 재태 기간과 몸무게가 가장 큰 요소인데 이런 경우는 70%를 조금 웃돈다. 생존하더라도 폐, 두뇌, 심장 등 온갖 장기의 미성숙으로 인한 다양한 예후를 가질 수 있다. 지금의 현재 병원에서는 더 이상의 전문적인 지원이 어렵기 때문에 큰 병원을 알아보고 있다 등 이었습니다.
집 사람에게 사실대로 설명을 했습니다. 입원실에 있던 그녀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망연자실 그 자체였지요. 나오는 것은 눈물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영동 세브란스의 방사선과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상황을 설명하고 아기를 받아 줄 수 있는 데를 알아봐 달라고요. 얼마 안 있어 신촌 세브란스의 신생아 전문의를 소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이미 소아과 의사는 나름대로 삼성 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을 확보해 둔 상태였습니다. (의사들이 파업중인 상태였기 때문에 보통의 경우처럼 환자를 트랜스퍼 시키려고 연락하면 안 되는 것이고 두 경우 모두 자신의 친분으로 확보한 것이더군요.)
다시 소아과 의사와 면담을 했습니다. 병원은 이미 확보를 했고 현재의 상태로 이송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그래도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보는 것이 좋겠다구요. 사실 이런 면담 전에 의사가 저에게 아기에 대한 확답을 여러 번 물어봤습니다. 지금은 무조건 아기를 살려달라고 하지만 실제로 아기의 과정과 예후에 대해 확언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잘 생각해서 판단을 하라고 하더군요. 무서웠습니다. 어떻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인공 호흡기를 비롯한 온갖 생명 유지 장치와 센서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앰블런스에 인큐베이터를 통째로 실었고 의사가 직접 호흡기 주머니를 쥐고 있으면서 동승했고 저도 함께 탔습니다. 앰블런스 안에서 의사가 “아가야, 착하지. 조금만 참자. 아이고 착한 것.”이라고 말을 걸어주면서 가는데 그 아이가 정말로 위급한 상황에 있고 매우 불쌍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때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삼성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그 동안 위험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래 아가야, 살아만 남아라. 그러면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모두 다해주마.
다시 새로운 주치의로부터 모든 설명을 다시 들었습니다. 다행히 조기 응급 조치가 굉장히 잘된 상태에서 이송되었다구요. 그런 경험 있는 의사 만난 것도 행운이라고요. 8월 24일 오후 3시 경에 앞으로 시작될 날들의 한 단락이 매듭 지어졌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이제는 언니가 된 서현이가 동생 이름을 도현(到賢)으로 하자고 했고, 도현이는 그 동안 몇 번의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2.8킬로그램 정도의 체중으로 컸습니다. 볼살이 엄청 올라서 무지 통통하게 보여요. 간호사들은 제가 도현이의 아빠인지 금방 알아보더군요. 저랑 붕어빵이래요. 제가 보기에는 서현이랑 너무 닮았어요. 서현이의 어렸을 때랑 똑같아요. 지금 당장 당면한 문제는 미숙아 망막증이라는 것인데 지속적인 검사를 하고 있고 최근에 청력 검사를 했는데 결과는 몇 주일 후에 나온다고 하네요. 그리고 며칠 후에는 드디어 퇴원을 하여 집으로 올 예정입니다.
하룻밤 사이의 일을 이야기하는데도 이렇게 길어지네요. 하옇든 새로운 생명을 주신 하늘에 감사 드리고 그 동안 수고하신 병원 관계자 여러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 도움을 주신 주위 여러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도 저와 아내와 저희 딸들은 여러분의 사랑에 기대어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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