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유형론에 확신을 가진 이가 주는 불편
아마 일상 생활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게 [혈액형 성격 유형]이다. 이건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의 혈액형을 밝히기만 하면 된다. 소심한 A형 같은 게 대표이다. 소심함을 더욱 강조하려면 AAA형이라고 하면 된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이 혈액형 성격 유형이 얼마나 강력한 호소력으로 돌아다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역시 검색으로 금방 알 수 있는 ‘근거 없음’은 굳이 추가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으로 흔하게 접하는 게 아마도 MBTI와 애니어그램(Enneagram)이지 않을까 싶다. 이 영역에 대해서 전문 강사 자격까지는 획득하지 않았지만, 결과에 대해서 해석해줄 수준의 교육과 훈련은 받은 상태이다.
자기 보고에 따른 결과
MBTI와 애니어그램 모두 진단 문항에 응답자가 선택하여 기입하고 결과값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응답자가 스스로 자신에 대해 [자기 보고]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이다. 즉 주관의 개입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결과 해석에서는 응답자의 욕망과 이상과 좌절과 희망 등 온갖 것들이 투영되어 있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해석을 몇 번, 아니 좀 많이 하다 보면 결과지를 보지 않는 상태에서도 응답자의 패턴 유형이 눈에 훤하게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옛날 미아리 고개 마루 점집의 주인장이 방석 깔고 앉는 것처럼 “내가 네 속을 뻔히 알렸다~!” 하고 싶어 진다. 아니, 할 수 있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이 깜박 넘어가 흔한 말로 좋아 죽고 못산다. 이런 것에 맛들이면 드디어 민폐이다. (아주 잠깐의 재미와 맞장구치는 놀라운 표정이 주는 즐거움의 경계를 잘 지켜야 한다.)
해석자가 주의해야 할 것
진단지 자체가 어떤 패턴의 정형화를 통해 사람의 성격을 큰 유형으로 나눈 것이다. 그 유형을 매우 잘게 쪼갰다 할지라도 당연히 큰 테두리에서는 일정한 수준의 공통 항목이 걸쳐 있게 마련이다. 결과 해석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이런 공통 유형에 대한 눈썰미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 맛에 길들어 해석자가 나서기 시작하면 말 그대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이다. 왜 그러냐 하면 ‘해석’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차 하는 순간에 응답자를 ‘규정’해 버리기 때문이다. 사람을 <해석>할 때는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초대하여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 태도와 방법에 숙달되면 짧은 시간에도 가능해진다. 물론 여유 있는 시간 동안 응답자의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규정>하는 것은 응답자를 주인공으로 삼아주지 않고 상품으로 바라보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어려운 말로 하면 이런 걸 ‘대상화’라고 한다.)
꿰어 맞추기
며칠 전 어떤 분이 한 흉악 범죄자의 애니어그램 유형을 분석하여 제법 큰 사이트에 게시한 적이 있다. 그 분은 범죄자에 어떤 한 유형이 해당할 것이라며 그런 판단을 하게 된 근거를 정성 들여 설명하고 있었다. (주장의 큰 줄기와 시의성은 적절하거나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정말 주의해야 할 핵심은 이렇다. 그 범죄자는 애니어그램 검사지를 수행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제 3자가 타인의 유형을 어떻게 알겠는가? 이미 확인된 검사지의 해석 과정 속에서 유형을 일반화한 경험으로 꿰어 맞추는 것이다. 이 얼마나 위험하고 오만방자한 일인가?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몇 걸음 더 나아가 진단과 규정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부채 도사 노릇을 하고 싶으면 지금은 유투브로 가야하지 않을까? 인간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은 인간에 대해 조심하고 또 겸손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타인을 읽고 싶은 당신 스스로의 욕망을 눈치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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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혼자이면서 여럿이기도 하고, 알지만 모르기도 합니다.
-함께하는 분들에게 맑은 눈을 가진 잘 닦인 그릇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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